박중철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인터뷰.
2019년 기준으로 50만명을 넘어섰다.
어쩌다 인권을 둘러싼 환경이 이렇게 나빠졌는가.
그들의 마지막 주소지는 고시원이나 쪽방, 혹은 '거주지 불명'이다
‘존엄한 죽음’을 위한 절박한 물음
기계 안에 들어간 사람은 1분 내에 의식을 잃고 사망한다.
[찬성] 고통을 실제로 겪는 환자에게는 매일매일이 고통스러운 나날이다. 회생할 수 없는 환자에게 이루어지는 연명치료는 생존 기간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럽게 죽음을 연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극심한 고통 때문에 죽을 권리는 유일한 희망일 수 있다. [반대] 죽을 권리를 허용하면 자발적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강요된 죽음이 될 가능성이 있다. 사회적, 경제적 약자들은 죽을 권리가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아니라, '죽어야만 하는 의무'가 될 수 있다. 회복 불가능한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게 아니라 '귀찮고 쓸모없는 인간'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디그니타스는 안락사를 주선하는 스위스 비영리기관으로 전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자국인이 아닌 외국인에게도 안락사를 허용한다. 스위스에선 디그니타스의 활동이 합법적이며 죽음의 자기결정권을 돕기 위한 인도적 차원의 봉사로 이해하므로 외국인에게도 허용된다. 그러나 어떠한 의학적 방법으로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말기 환자라야 하며 환자의 자발적 동의가 필요하다. 디그니타스는 한국인 신청자가 2012년 이래 지금까지 모두 18명이 있었다고 공개했다.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소셜미디어 환경에서 유명인의 프라이버시는 더더욱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프라이버시는 존엄한 삶과 죽음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보위의 이별 방식은 프라이버시 소멸 시대에 어떻게 존엄함을 지킬 수 있는가를 알려준다. 가족과 친지, 의료진은 물론이고 마지막 활동 과정에서 만난 음반제작자, 영화인, 사업가 등 숱한 사람들 중 누구도 보위의 건강 상태를 누설하지 않은 덕분이다. 프라이버시 소멸 시대의 '기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의학이 발전하고 나서는 그냥 죽는 일이 좀처럼 없다. 이제 대부분 사람은 죽음을 이기기 위해 용감하게 메스에 몸을 맡기고 장과 폐를 열어젖힌다. 하버드 출신 외과의인 저자 아툴 가완디는 시간 대부분을 수면과 고통의 노예가 되어 삶의 질을 포기하고 사랑하는 이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버려가며, 존엄한 죽음과는 거리가 먼 마지막을 택하는 환자들을 수없이 봐 왔다. 그는 지난 세기 인류가 의학을 통해 '어떻게 조금이라도 더 살 것인가(연명치료)'에 대해 논의해왔다면, 이제는 '어떻게 존엄하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 논의해야 할 순간이라고 말한다.
경기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무대에서는 주역인 '마타도르(Matador)가 검과 '물레타(Muleta)'라고 하는 막대기에 감은 붉은 천을 들고 등장한다. 이 단계에서 소는 이미 지칠 대로 지치고, 출혈과 자상, 골절 등으로 인해 심한 고통을 느끼고 있으며, 정신적으로도 거의 미쳐버린 초죽음 상태다. 규칙대로라면 심장에 칼을 꽂아 즉사시켜야 하지만, 반 톤이 넘는 덩치의 소가 단 칼에 죽는 일은 드물다. 보통 세 번, 네 번씩 폐와 심장을 칼로 난도질 당하는 동안 소는 어김없이 피를 토한다. 소가 쓰러져 경기가 종료된 다음에도 몸만 마비 상태일 뿐 의식이 남아있는 채로 숨을 몰아 쉬고 있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